바쁠수록 써야한다
뭐라도 기록해야한다
요즘같이 일이 많을 때는 더욱 간절히 그런 생각이 든다. 일은 재밌지만 어느 순간에는 삶의 균형을 잃기도 한다. 모든 순간 내가 주도할수는 없으니. 다만 그 속에서 내 태도는 정할 수 있을 뿐. 외적인 환경은 내 의사랑 상관없이,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겪으로 숨돌릴 틈 없이 흘러가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는,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주도권을 잃은 듯한 느낌. 그럴 때 필요한게 내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느낌, 자각이다. 이때 도움이 되는게 글쓰기다.
글을 쓰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온전히 나로 머무르게 된다. 덕분에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칫 휘둘린다는 느낌에 휩쓸리며 번아웃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삶의 중심을 잡도록 해준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진실된 글을 써야한다'이다. 진실된 글이란,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글, 그럼으로써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뭐라도 하나 얻어가는 글이다. 거짓된 글은 세상에 빛을 더하지 못한다. 그런 글은 낭비다.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 내것만이 아니라 읽는 이의 것도.
정책학자 윌다브스키는 글쓰기를 생각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알고싶은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썼다. 답을 정해놓고 거기로 모두를 이끌려고 쓰는게 아니라. (출처: 최병선 교수님의 정책학자 윌다브스키에 관한 논문. 나는 윌다브스키의 원전을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원에서 배웠던 그의 이론들은 참신했다. 세상의 주류와는 어딘가 다른, 자신만의 목소리를 냈고 이를 통해 세상에 빛을 더했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자유롭게 생각하며, 진실된 글을 쓰고 싶다.
왜 이렇게 바쁠까?
어쩌면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은, 왜 이렇게 바쁠까 보다도, 왜 이 와중에 마음이 안좋을까? 이지 않을까 싶다. 바쁜건 그 원인에 대한 얄팍한 가설 중 하나일 뿐. 바빠도 얼마든지 기쁠 수 있다. 그렇기에 바쁜게 이 저기압의 원인은 아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딱히 기분이 좋을 이유가 없다. 어쨌든 나는 최근 이별을 겪었고... 그리고... 불평할 걸 찾자면 사실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불평할 거리를 찾다보면, 감사하게도, 반박하는 목소리가 마음속에 들려온다. 불평거리를 찾고 있으며 거기 머물러 있는건, 그거야말로 한심한 일이고 악마의 유혹이라고.
조금만 겸손한 자세로 주위를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가득하다. 어쨌든 나는,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특별히 아픈 곳도 없고, 방해받는 일 없이. 또한 여러 소중한 사람들과 깊이있는 인간관계를 맺고 있고, 커리어 측면에서는 의미있는 일, 하고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의 사랑을 느낀다. (가끔 잊지만... 감사하게도 늘 다시 불러주신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내 가장 큰 강점일지도 모르겠다. 악의 유혹에 맞서서 선을 택하는 것. 불평에 머물지 않고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 때로 유혹에 빠지고, 그 대가를 치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늘 다시 좋은 길로 돌아오고 거기 머물 줄 아는 것.
이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
긍정할 수 있는 내 강점을 인지하고나니 마음이 좋아진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한결 기쁘다. 역시 바빠서 기분이 안좋은게 아니었다. 감사함이 부족했다. 지금은 다시 찾았다.
감사합니다.
아멘.